한때 저를 너무도 힘들게 했던 고민이 있습니다.
이쯤에서 그만 할까, 조금 더 노력해 볼까
한번 더 푸쉬를 해야 할 때는 언제고 그만 돌아서야 할 때는 언제인지를 가늠하는 게 항상 어려웠습니다.
이 회사에서 커리어를 조금 더 이어가야 할까 이직을 해야 할까, 상처가 되는 이 관계는 조금 더 인내하고 서로 맞춰가는 노력이 필요한 걸까 이쯤에서 뒤돌아 서야 하는 걸까, 도무지 해도 안 되는 이 일은 내 길이 아니라는 증거일까 아니면 노력 부족인 걸까.
위기의 순간은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분명 좋아서 시작한 관계이고, 중요해서 꼭 해내고 싶었던 일이지만 그 과정이 매번 즐거울 수는 없으니까요. 그러니 단지 지금 힘이 들거나 싫어졌다는 이유로 무작정 포기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좋게 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고난의 일부가 아니라, 애초에 잘못된 길을 선택했기 때문에 겪는 고통이라면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요?
성장은 ‘계단식'으로 온다고 하잖아요. 이 말은 희망적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절망적이기도 합니다. 내가 지금 기나긴 버팀 구간을 지나 성장의 코앞에 와있는 건지 아니면 아직도 한참 더 남은 건지 알 수가 없어요. 아직 멀었다면 이제 그만 가고 싶은데, 만약 변화의 직전에 와 있는 거라면 이제 와서 포기해 버리는 바보가 되고 싶지 않거든요.
그걸 판단하는 일은 언제나 쉽지 않았습니다.
저는 무엇이든 시작하는 게 쉽지 않은 대신 한 번 시작한 일을 쉽게 놓지 못합니다. 그런 저를 알기에 괜히 답도 없는 일을 끝까지 붙들며 고집을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누구든 이 길이 맞다고 확실히 말해주기만 한다면 힘든 거야 얼마든지 버틸 수 있을 텐데, 이 길이 아니었구나 하는 깨달음을 뒤늦게 마주하게 될까 봐 무서웠습니다.
지금보다 어렸을 때에는 그 판단을 하는 것이 더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몰랐고, 원하지 않아도 열심히 버티며 해내야 했던 일들이 훨씬 더 많았거든요. ‘이게 내가 원하는 것일까'와 같은 질문을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닌 시간이 길었습니다.
나이가 드니 상황이 조금 나아진 것 같아요.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반드시 해내야 하는 일로 착각하는 일이 줄었습니다(아예 없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시도한 것만으로도 가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시간이 아주 많이 흐른 후에 시도해 보지 않은 것을 두고두고 후회할 일은 무엇일까에 대한 답을 조금은 내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결정이 어려울 때면 저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이 결정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이런 장면을 상상합니다. 지금 제 앞에 있는 갈래길을 계속계속 줌아웃해서 아주 높고 먼 곳에서 바라보면 여러 갈래길의 끝이 다시 하나의 길로 뭉쳐지는 거예요. 지금의 선택이 저를 영원히 다른 인생으로 인도할 것 같지만 사실 조금 걷다 보면 같은 길에 도달하게 되는 거죠. 물론 진실은 알 수 없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편해집니다.
하고 싶은 일은 언젠가 기어이 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이 아니더라도요.
마흔로그는 오늘을 마지막으로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오늘의 주제처럼 ‘놓아버려야 할 일'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은 아니에요.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글쓰기는 저로서는 ‘그 끝에 아무것도 없더라도 시도하지 않을 수 없는 일'로 이미 결정을 마친 일이니까, 언제 어떤 형식으로든 다시 쓰게 될 것 같습니다.
하고 싶은 일들이 마음속에서 엉킨 실타래처럼 한데 뭉쳐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어요. 끄트머리를 잘 찾아서 엉킨 부분을 정리할 시간이 좀 필요한 것 같아요.
매번 글을 읽어주셔서 정말 고마웠습니다. 종종 답장을 보내주셔서 또 기뻤습니다. 덕분에 편지를 보낸 1년 7개월 동안 행복했습니다.
조금 충전하고 <시즌 2>로 돌아올게요. 그때에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못 먹어도 고
케잌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