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개월만이네요.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던 지난 겨울(주택살이 초보인 저는 폭설예고가 있으면 어닝을 냅다 걷어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고, 덕분에 정원에 설치된 어닝이 처참하게 무너져 내리는 대형 사고가 있었습니다), 날이 풀릴 때마다 부지런히 햇볕에 얼굴을 들이밀며 즐겼던 짧은 봄이 지나고 벌써 여름입니다. 두 계절을 어떻게 보내셨는지 궁금하네요.
저는 처음으로 제가 쓴 글이 물성을 가진 책으로 인쇄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제 돈 주고 샘플책 한 권을 인쇄한 것 뿐이지만요.
대단한 각오랄 것도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독립출판 강좌를 하나 들었어요. 6주 짜리 코스라 그 기간동안 슬슬 뭐라도 써볼까 싶은 마음이었지요. 하지만 강좌 운영 무려 7년차인 강사님은 저같은 게으름뱅이들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계신 분이었습니다.
날짜를 헷갈려 1주차는 결석을 했고(...네..), 2주차 수업을 들으러 가니 3주차에 인쇄 마감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원고 마감, 교정교열, 표지 시안, 원고에 들어갈 드로잉 마감, 이 모든 걸 난생 처음 써보는 인디자인과 포토샵 프로그램에 얹어서 휘몰아치듯 최종 파일을 완료해야 했습니다. 멱살을 잡은 손이 너무 빠르게 저를 끌어당기다 보니 허공에 발을 구르며 달리는 기분이었어요.
그렇게 해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6주차 마지막 수업시간에 샘플 책이 제 손에 놓여있더라고요.
신기했어요.
살아온 기간만큼이나 오랜 시간동안 책을 쓰고 싶다는 소망을 품고 있었거든요. 물론 누구든 인쇄소에 파일만 넘기면 책이라는 것이 만들어진다는 게 그렇게 신기할 일인가 싶지만, 저에게는 그랬습니다.
편집자도 없고, 디자이너도 없고, 누구 하나 봐주는 사람 없이 혼자 만든 책이라 엉성하기 짝이 없지만 그건 지금의 내가 엉성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인정하기로 했습니다(제 동생은 표지가 영 힙하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아니 만드는 사람이 전혀 힙하지 않은데 힙한 표지는 어떻게 나오는 거죠...?). 그래서 이왕 엉망인 거 엉망진창 판매까지 해볼까 싶어서 펀딩을 시작했어요.
이 책은 제가 20대 중반에서 30대 초반까지 다녔던 여행에서의 삽질 경험을 바탕으로 제가 깨닫게 된 것들을 적은 '삽질여행 에세이'입니다. 지금의 제 생각, 제가 타인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형성하는 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이 여행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기억인데, 읽는 분들에게도 이런 마음이 아주 조금이라도 전달되기를 바라며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