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저녁 공기가 선선해진 것을 보니 가을이 오긴 오나 봅니다.
정수리에 내리쬐는 햇빛이 숨이 턱 막히게 뜨거웠던 지난여름 폭염주의보 알람만큼이나 많이 받은 것이 사람을 찾는다는 알람이었어요.
‘박OO씨(여, 74세)를 찾습니다 - 150cm, 반백발, 노란 계열반팔(추정), 검정계열 긴바지(추정)/112’
‘OO에서 실종된 김OO씨(남, 89세)를 찾습니다 - 160cm, 점퍼(아이보리), 검정바지, 흰색야구모자/182’
하루가 멀다 하고 ‘배회하고 있는 노인'을 찾는다는 알람이 폭염주의보 알람과 번갈아가며 휴대폰을 울렸습니다. 이 더운 날, 저분들은 집을 떠나 어디를 그렇게 배회하고 계셨을까요? 어디를 가려다 길을 잃으신 거며, 무엇을 찾고 계셨던 걸까요? 그분들이 걷고 또 걸은 거리는 2024년 이곳이 맞긴 할까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실종된 사람을 찾았다는 알람은 따로 오지 않기에 저 수많은 알람의 결과가 어떠했는지 저는 몰라요. 다들 무사히 집에 돌아가셨기를 바랍니다. 찾고자 했던 것이 무엇이었든 마음도 조금은 편안해지셨기를 함께 바라보지만, 그건 그리 쉽지 않은 일이겠지요?
‘배회감지기'라는 것이 있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어요. 치매노인의 옷에 고유번호가 적힌 인식표를 부착해서 경찰에서 발견 시 집주소 등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하고, 아예 GPS를 통해 위치추적을 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진 팔찌를 드리기도 한다고요.
경찰민원상담은 182번, 경찰이 출동해야 하는 범죄신고는 112번을 통해서 한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일과시간이 지난 후의 민원신고나 치매노인의 실종신고는 112번으로 해야 한다는 것도요. 하지만 언제나 목적지를 향해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의 눈에 과연 노인들의 ‘배회’가 눈에 띌까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 역시 그동안 관심을 가진 적이 없어서 몰랐습니다. 이렇게나 많은 노년의 삶이 거리를 배회하고 있다는 사실을요. 기억을 잃고 당황한 마음이, 잃어버린 방향감각과 인지능력을 만나 목적지에 닿지 못하고 이리저리 헤맵니다. 걸어도 걸어도 가닿지 못하는 곳을 찾아서 땡볕을 하염없이 걷는 마음이 어떨까요?
'심리적, 신체적으로 큰 변화를 겪는 시기'가 사춘기의 정의라면, 중년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몸에 일어나는 변화, 그리고 느닷없이 겪게 되는 마음의 혼란은 사춘기 못지않게 중년에도 급격하게 찾아옵니다. 몸도 마음도 나 적응하기 편하라고 서서히, 조금씩 바뀌는 법이 없습니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해져 변화가 더 갑작스럽게 느껴지기도 하는 거겠죠. ‘왜 이러지? 언제부터 이렇게 됐지?’ 싶어 당황스럽기만 합니다.
어렸을 때 중년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았듯, 중년의 저는 노년의 삶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막연히 노후자금에 대한 걱정만 할 뿐, 노년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지는 생각하지 않아요. 고민한다고 뭘 딱히 더 알게 되는 것도 아니고, 당장 중년의 삶을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생각할 게 산더미라서요.
배회하는 노인에 대한 알람을 받으면서 올여름엔 저의 노년에 대해 조금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중년이 ‘어떠한 유혹에도 흔들림 없는 불혹'이 아니라 휘몰아치는 급격한 변화를 동반한 제2의 사춘기였듯, 또 한 번의 격변이 노년에 찾아올지도 모르겠다고요.
그동안 내가 알던, 나에게 익숙했던 많은 것들이 송두리째 바뀌는 경험을 하게 되지 않을까요? 눈감고도 할 수 있었던 익숙한 일들을 할 수 없게 되고, 내 삶을 이뤄온 기억들이 점점 희미해지는 것은 아무리 인생을 오래 산 사람이라고 해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하면 상실을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될까요? 치매든 노화로 인한 기억력 감퇴든 필연적으로 어떤 기억들은 희미해지게 될 테죠. 제가 마지막까지 쥐고 있는 기억은 무엇이 될까요? 잃어버리면 안 되는데, 잃어버리는 바람에 자꾸만 찾아 나서게 될 기억은 무엇일까요?
영화, 드라마, 다큐멘터리 등을 통해 접한 사례들을 보면, 반드시 가장 소중하고 행복한 기억을 붙들고 있는 것 같지는 않더라고요.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기억에서 놓아버리기는 대신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어릴 때의 기억을 꼭 붙들고 있기도 하니까요.
어떤 기억이 제 생의 마지막 기억이 될지는 랜덤이라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보입니다. 그저 오늘을 좋은 기억으로 가득가득 채워서 나쁜 기억이 남을 확률을 줄여보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인 것 같고요.
나이가 들면서 상실은 뭉텅이로 순식간에 오고, 새로운 것은 찔끔찔끔 더디게 온다 하더라도 내가 그저 잃고 있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자각하면서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잃어버리게 될 것들만을 생각하며 사는 인생에 의연해지는 방법을 저는 아직 모르겠거든요.
오늘의 일이 나의 마지막 기억이라면, 뭘 하실래요?
케잌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