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읽기 시작한 책이 꽤 재미있습니다. <바디, 우리 몸 안내서(저자: 빌 브라이슨))>라는 책인데요, 우리 몸의 구석구석을 경이와 애정의 시선으로 설명하고 있어요. 이렇게 많은 과학적 지식을 전달하는 책을 어쩜 이리도 재미있게 쓸 수 있나 감탄하며 읽고 있습니다.
우주의 신비를 파헤치고 AI를 연구하는 (저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능력을 가진 인간이 가장 가까이에 있는 자신의 몸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모르는 바가 많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책의 여러 챕터 중 <뇌> 부분을 읽으며 언젠가 배웠지만 살면서 그다지 떠올린 적 없이 기억 저 편에 묻어 두었던 단어들 - 뉴런, 시냅스, 시상하부, 해마 등등 - 을 오랜만에 마주쳐 반가워(?) 하던 와중에 아래 문장에 눈길이 멈췄습니다.
“우리 뇌의 가장 신기하면서 특이한 점은 대체로 그런 뇌가 굳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지구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음악을 작곡하고 철학에 빠질 수 있는 능력까지는 필요하지 않다. 사실상 그저 네발동물보다 조금 더 뛰어나기만 하면 된다.”
생존의 필요성 관점에서 보면, 뇌가 이렇게까지 고차원적인 정신적 능력을 갖출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인간의 신체는 다른 비인간 동물에 비해 연약하니까, 이런 열등한 신체조건을 가지고 살아남으려면 뇌가 발달할 필요가 있다는 점은 확실합니다. 도구도 사용할 줄 알아야 하고, 집단을 이루려면 의사소통도 해야 하고요.
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쓸데없이' 너무 발달한 뇌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지요. ‘뭘 그렇게까지 해' 싶은 거예요.
사실상 ‘쓸데없는' 잉여의 그 능력을 삶을 좀 더 풍요롭게 만드는 데에 자유롭게 활용하기만 해도 됐으련만, 기어이 인간은 우리끼리의 경쟁과 부풀린 욕구 충족을 위해 가진 능력을 120% 써도 아등바등하며 살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어 버린 건 아닐까 싶어요.
자발적으로 피곤한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냥 사는 것을 넘어서 삶의 의미를 고민하고 늘 ‘무언가'를 이루고, 지금보다 나은 ‘누군가'가 되고 싶어 하는 갈망이 지금의 인류가 누리고 있는 많은 것들을 가능하게 했겠지요. 하지만 가끔은 그저 쓸데없는 것을 쓸데없이 놔두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10년 전쯤 한 그룹의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멘토링 세션의 패널로 참석한 적이 있어요. 본격적인 세션을 시작하기에 앞서 진행자가 학생들에게 ‘10년 후 나의 모습에 대해 한 줄로 써보세요'라고 요청했고, 그 답변들을 모아서 커다란 보드에 붙여 두었어요.
단연 눈길을 끌었던 건 ‘뭐라도 되겠지'라고 적힌 종이였습니다.
아, 그 호탕함이란…
정말로 당당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적은 것인지, 아니면 자꾸만 그런 질문을 하는 어른들이 지긋지긋해서 그리 적은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제가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던 자세여서 조금은 부러웠습니다.
왜 항상 무언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그건 아마도 틈만 나면 ‘10년 후 나의 모습을 그려 보라는' 질문을 받아왔기 때문일지도요.
중년이 되고 나니 이젠 누구도 저에게 ‘커서 뭐가 되고 싶은지' 묻지 않습니다. 이제 좀 ‘쓸데없이 고스펙'인 뇌를 쉬엄쉬엄 놀려가며 살아볼까 봐요.
생존에 성공한다면 할머니가 될 테고요. 그 외의 것들은 맘 내키는 대로 차차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아님 말고요
케잌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