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입니다!
‘높고 높은 하늘이라 말들 하-지만, 나는 나는 높은 게 또 하나 있지~'로 시작하는 어버이 은혜 노래가 머릿속에서 자동 재생되는 날이지요(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만, 오프닝으로 한 번 써봤어요).
마흔로그 구독자 한 분이 이런 고민을 남겨주셨어요. ‘이제는 더 이상 든든한 기둥이 아닌 부모님을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다'고요. 어버이날을 맞아 저도 이 고민에 덧붙여 부모님에 관한 제 생각을 나눠보려 합니다. 나이가 들면서 변하는 부모님과의 관계가 어떤 면에서 쉽지 않은지는 사람마다 다를 테니 구독자님의 의도와 전혀 다른 글이 될 수도 있겠지만, 저는 제 입장에서 한번 적어볼게요.
부모님에 관해서라면 정말 오래, 깊이 생각했어요. 제 머릿속에서 풀리지 않은 부분이 많아서 그랬습니다.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정말 다양한 감정이 생겼다 사라지는데 ‘죄책감'만큼 오래도록 강하게 마음을 짓누르는 건 없었어요.
‘아~ 정말 감사한 분들이야'라며 마냥 즐거운 마음으로 부모님을 대할 수 있는 자식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감사만 하기에는 ‘받은 만큼 되돌려드려야 한다. 효도해야 한다'는 강한 의무감이 따라오거든요.
부모님의 은혜가 ‘높고 높은', ‘넓고 넓은', 게다가 ‘깊고 깊기까지 한…’ 엄청난 것일수록 그런 사랑을 되갚을 수 있을 리 만무하기 때문에 저는 언제나 실패합니다. 일상적으로 하는 것은 불효고, 죄책감은 언제나 마음 한구석에 기본값으로 자리하고 있지요.
나이가 들수록 조급한 마음이 추가돼요. 부모님의 노화가 피부로 느껴질수록 그간의 저의 불효를 만회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는 사실이 상기되니까요.
저의 부모님은 키가 크신 편이고, 체격도 탄탄하셔서 항상 건강해 보이셨는데, 나이가 들면서 살이 급격히 빠지고 자세가 구부정해졌어요. 볼 때마다 외모의 변화가 너무 크게 느껴져서 깜짝깜짝 놀랍니다. 게다가 여기저기 아픈 곳이 많이 생기니 예전의 활력을 찾아보기 힘들고요.
안 하던 행동을 하시기도 합니다. ‘나이가 드니까 서운한 게 많아져'라며, 바로 지난주에 만났는데도 ‘왜 이렇게 얼굴 보기가 힘드냐'며 하소연을 하시거든요. 저는 아직 제 삶 하나도 건사하기 벅찬데 어느 순간 보호자의 역할이 부모님에게서 저한테로 넘어오는 것이 느껴집니다.
‘부모님 살아 계실 때 잘해드려야 한다’는 말은 굳이 저까지 하지 않아도 모두의 마음속 깊이 박혀있을 테니까 저는 조금 다른 얘기를 해볼까 봐요.
지금부터 하는 말은 동의하지 않는 분들이 계실 수도 있겠어요. 하지만 저는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감정이 어느 정도 사회적으로 학습(강요?)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부모자식 간의 관계도 인간관계의 일부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고, 그 관계의 형태도 다를 수 있는데 ‘부모는 희생하고 자식은 효도한다’는 역할 안에 단단히 매여 있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부모님의 노화가 안쓰러운 것은 우리가 부모님의 젊고 건강한 시절을 기억하고 있어서 변화가 더 크게 와닿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 젊음의 일부를 내가 앗아갔다는 죄책감이 조금은 작용한 게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부모님이 스스로에 대해 느끼시는 것보다 오히려 제가 부모님의 노화를 더 비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저는 나이 드신 부모님의 보호자 ‘역할’을 냉큼 자처합니다. 부모님의 노화는 곧 저의 책임이 되고, 그 책임감이 어느 순간 부모님에 대한 애정을 넘어서 버린 것 같습니다. ‘희생'과 ‘효도'가 사라진 부모자식 간의 관계는 어떤 모습일까 생각해 봤어요. 우리가 서로를 얼마나 순수한 애정의 마음으로 대하고 있나, 한쪽이 다른 쪽을 보호하고 부양하는 역할에 너무 몰두해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요.
제가 사춘기 때 엄마한테 자주 했고, 엄마가 극도로 싫어하셨던 말이 ‘남이사'였어요. ‘남의 일에 왜 참견하냐'는 O가지 없는 저의 말에 엄마는 언제나 ‘네가 남이야?’라고 되묻곤 하셨죠. 저때는 반항심에 한 말이지만, 요즘 들어 곱씹을수록 우리는 남이 맞는 것 같습니다. 아무런 관계가 없는 타인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분명히 다른 사람이라는 뜻에서요.
부모자식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미션은 ‘서로에게서 완전히 독립하기'인 것 같아요. 서로를 의지하지만,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는 것. 상대방을 내가 없으면 안 되는 존재라고 받아들이지 않는 것. 서로에게는 대신 짊어져 줄 수 없는 고통이나 고됨이 분명 있고, 그건 사랑하는 마음과 별개로 어쩔 수 없다는 걸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마흔이 넘은 제가 과연 부모님으로부터 정서적으로 완전히 독립했는가, 아직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고, 제 아이를 저에게서 독립시키는 것이 저의 새로운 목표입니다.
저에게 부모님은 언제나 ‘나를 행복하게 해 주느라 많은 것을 희생한 사람'이었어요. 제 아이가 그와 같은 시선으로 저를 본다고 생각하면… 그건 싫습니다. 저에게 보답하기 위해 아이가 지나치게 애를 쓴다면 그건 더 원치 않습니다. 제가 죽었을 때 아이에게 남은 마음이 ‘죄송함, 후회'가 아니라 ‘보고 싶다' 정도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저는 제멋대로 그 마음을 부모님과 저의 관계에 대입해 보았습니다.
부모님의 지나간 젊음, 우리 사이에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내가 그동안 해왔던 숱한 잘못들을 곱씹으며 부모님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으로 허우적거리지 않겠다 마음먹었어요. 그냥 할 수 있는 선에서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가 부모님의 ‘든든한 기둥'이 되어드리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부모님이 남은 생에서 겪게 되실 여러 가지 불편함이나 고통, 서운함을 말끔히 없애드릴 수도 없습니다. 가끔 힘들 때 짚을 수 있는 약간 부실한 지팡이 정도는 될 수 있겠지요. 그것까지가 저의 목표입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불효자인 저의 핑계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죄책감을 덜어내고, 대신 애정하는 마음에 조금 더 눈을 돌려보고 싶어요.
여러분과 부모님과의 관계는 어떤가요? 저와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계신 분들도 많겠지요? 어쩌면 약간은 괴변 같은 제 글보다 여러분의 생각이 애초에 이 고민을 털어놓으셨던 구독자님께 더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어요. 생각을 나눠주시면 모아서 다시 공유해 보겠습니다.
즐거운 어버이날 보내세요! :-)
이래봬도 K-장녀
케잌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