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서면 뭘 하려고 했는지 까먹는 일이 수두룩하다고 제가 말했던가요?
뭔가 필요한 게 있어서 방에 가다가 문득 내가 왜 여기 있는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아 정지화면처럼 서 있거나, 우유를 꺼내려고 냉장고를 열었다가 잼을 꺼내 들고 어따 써야 할지 몰라 멀뚱멀뚱 당황하는 일 말이에요. 한두 번이면 웃긴 에피소드쯤으로 귀엽게 봐주겠지만 하루 걸러 한 번씩 반복되다 보니 이젠 웃기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오늘 하려는 이야기는 이게 아니에요.
깜박깜박하는 탓에 일이 늦어지고 실수를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고, 어떤 일을 하다가도 자꾸만 정신이 딴 길로 새어 버려서 골치가 아픕니다. 집중해서 하나의 일을 끝내지 못하고 자꾸 딴짓을 하는 것이지요.
딴짓이야 제 삶에서 떼려야 땔 수 없는 것이었기에 언제나 수업 시간에는 몸이 베베 꼬이고, 엉덩이가 들썩거리고, 친구에게 쪽지가 쓰고 싶고, 시험기간에는 자꾸만 방청소가 하고 싶고.. 그랬더랬죠.
하지만 지금은 정도가 훨씬 심해지는 것을 느껴요. 예전엔 50분 수업시간 동안 집중을 못하는 것이었다면, 지금은 15분 집중도 어렵습니다. 지금 수능을 다시 보라고 하면 기억에 남는 지식이 없어서도 문제지만 일단 그 기나긴 시험시간 동안 앉아있을 수나 있을까 싶습니다.
어렵고 하기 싫은 일을 할 때만 몸을 베베 꼬는 게 아니에요. 좋아하는 사람들과 얘기하다가도 잠깐 얘기가 끊어질 때 어김없이 휴대폰을 확인하고, 특별히 집중력을 요하는 콘텐츠가 아닌 이상(사실 집중해서 봐야 하는 것 자체를 요즘은 멀리하는 것 같습니다) 영상을 보면서도 휴대폰을 만지작 거려요.
멀티태스킹은 제가 가장 못하는 것인데도요.
‘n 스크린 전략'이라고 마케팅에서 쓰던 개념이 있어요. 하나의 콘텐츠를 TV, PC, 태블릿, 모바일 등 다양한 (n 개의) 스크린에서 끊김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인데요, n 개의 스크린을 어떻게 마케팅에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다양한 전략을 연구하곤 했습니다.
소비자는 n개의 스크린을 ‘바꿔가면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즉, 이동 중에는 모바일을 보다가 집에서는 PC나 TV 같은 대형 스크린으로 갈아타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n개의 스크린을 사용합니다(TV를 보면서 핸드폰을 하고, 태블릿을 켜두는). 그런 측면에서 거의 언제나 활성화되어 있는 것이 모바일 화면이고, 그래서 많은 기업들의 노력이 모바일을 잘 활용하는 것에 집중되고 있어요.
1년 전에 출간된 책 <도둑맞은 집중력>(a.k.a 집중 맞은 도둑력)을 읽어보셨나요?
책에서는 스마트폰과 SNS를 사람들의 집중력을 빼앗아 가는 주범 중 하나로 분석하고 있습니다(직장인의 평균 집중시간은 3분이라고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딱히 반박할 수가 없는 수치라서 슬프네요).
저는 모바일 마케팅을 일로 했던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기업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끌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콘텐츠를 보고 물건을 사는 데에 쏟도록 만들기 위해 어떤 장치들을 마련하고 얼마나 많은 돈을 쓰는지 보통의 사람들 보다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책에서 언급된 모바일 테크/콘텐츠 기업들의 여러 가지 수법들이 하나도 낯설지가 않았어요. 책에 나온 것보다 더 한 일도 하는걸요. 오히려 이런 것들을 일반 사람들은 잘 모르고 있구나..라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 수법의 면면을 안다고 해서 덫에 걸리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단순히 스마트폰에 허비하는 많은 시간이 아깝다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스마트폰을 하고 있지 않을 때에도 어떤 일에 몰두하는 경험이 점점 사라지는 기분이에요. (기분 탓이 아니라 아마 사실일 겁니다) 그 사실이 안타깝기도 하고, 조금 무섭기도 합니다.
하나의 일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다른 일들을 펼쳐 놓습니다. 인터넷 브라우저에 창이 몇십 개씩 떠 있기도 하고요, To-do 리스트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습니다. 언제나 분주하고 정신이 없어요. 요즘 들어 제 삶에 대한 통제력을 완전히 잃어버렸다고 느낄 때가 종종 있는데, 이런 상황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아요.
큰맘 먹고 스마트폰을 멀리 치워둘 때도 있지만, 일상의 너무 많은 것들을 스마트폰에 의지하고 있기 때문에 머지않아 스마트폰이 ‘필요한' 순간이 찾아옵니다. 그래서 잠시 손에 든 스마트폰은 어김없이 목적한 그 일이외의 수많은 딴짓을 한 후에야 제 손을 떠나게 되고요.
제 집중력을 되찾고 싶어요.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게 어떤 일에 몰두하고 싶고, 떠오른 생각을 딴 길로 새지 않고 머릿속에서 붙잡아 깊고 넓게 발전시키고 싶고, 끝도 없이 공상도 하고 싶고요, 책 표지를 열어서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완전히 빠져들고 싶습니다.
다 해보았던 경험인데, 저도 모르게 놓쳐버린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이 글을 쓰다 말고 휴대폰을 들어(?!?) ‘<스마트폰과 헤어지는 법> (케서린 프라이스 지음)’라는 책을 e북으로 다운받았어요. ‘도둑맞은 내 시간을 되찾는 30일 플랜'이라는 부재가 있는데, 30일 후에 과연 제 시간을 되찾을 수 있을지 한번 실험해 보고 알려드릴게요 🙂
나이가 들면서 ‘시간’이 저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 되었어요. 시간이 중요하지 않았던 적은 인생에서 단 한 번도 없었겠지만, 요즘은 아주 의식적으로 시간에 대해 생각합니다. 그것을 누구와 어떻게 무슨 일을 하면서 보낼지에 대해서 계속해서 생각해요.
저는 느리지만 고집스러운 사람이니까, 시간을 한번 되찾아 보겠습니다.
여러분의 시간도, 여러분이 소중하다고 믿는 그곳에 쓰이고 있기를 바라요.
야외에서 따땃한 봄 햇살을 (얼굴 왼쪽으로만) 받으며
케잌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