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는 방의 한쪽 벽면을 연보라색으로 페인트칠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페인트칠이었어요. 작은 방의 한쪽 면을 칠하는 데에 꼬박 하루가 걸렸습니다. 벽과 바닥 보강 작업을 하고 여러 번 덧칠하는 중간중간 페인트가 마르길 기다리고 난장판이 된 방안을 치우는 것까지 할 일이 많더라고요.
흰색, 미색, 연한 회색, 뭔가 흐리멍덩한 색의 벽만 보며 살았는데 난생처음 화사한 연보라색 벽이 생기니까 기분이 좋아서 오며 가며 자꾸 방을 쳐다보게 됩니다.
물론, 아주 작은(?) 사고가 있긴 했어요. 벽의 왼쪽부터 신나게 페인트칠을 시작했는데 1/3 지점에서 페인트 한 통이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저에겐 페인트가 2통밖에 없는데요… 마침 벽면 오른쪽에는 커다란 서랍장을 놓을 계획이라 가려지는 부분은 비워두고 칠하기로 했어요. 역시 위기 대응능력이 뛰어나다며 자화자찬하면서요.
페인트가 모두 마른 후 서랍장을 놓았는데, 글쎄… 서랍장으로 안 가려집니다? 페인트를 칠하지 않은 예전 벽이 서랍장 옆으로 반 뼘이나 보이는 거예요.
저는 종종 확신을 가지고 엉뚱한 실수를 할 때가 있는데요, 서랍장의 정확한 치수를 재야겠다는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던 거예요. 한 번쯤 의심을 할 법도 한데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냥 이 정도면 가려지지 않을까?’하고 생각되는 지점까지 거침없이 페인트칠을 한 겁니다.
페인트는 이미 다 썼고, 처음부터 다시 할 기력은 없으니까 드러난 부분을 가릴 포스터나 찾아봐야겠어요.
페인트칠과 더불어 현관 바닥의 타일을 새로 깔았고, 오래된 주방 하부장을 필름지로 덮어 색을 바꿔주었어요. 페인트는 고르게 칠하지 못해 얼룩덜룩하고, 타일은 재단을 잘못해서 삐뚤빼뚤하고, 필름지에는 기포가 가득합니다. 하지만, 어차피 노안이 오고 있어서 잘 안 보이니까 괜찮아요!
이 모든 것들이 저에겐 처음 해보는 경험이에요. 누군가에겐 별 것 아닐 수 있는 이 일들이 저에겐 나름의 큰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여태까지 일을 벗어난 일상의 영역에서 저의 기본값은 ‘심각하게 망가지지 않는 한 현상을 유지한다'였거든요. 사소한 불편을 기막히게 잘 참는 편입니다.
벽에 아무 문제가 없는데도 연보라색으로 칠하고, 현관이 무너져 내리지 않았는데 타일을 다시 깔고, 고작 ‘색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굳이 시간과 노력을 들여 필름지를 붙이는 이 행위들이 소소하게 저 자신을 돌보는 일처럼 느껴져서 꽤 기분이 좋았습니다.
혼자 하루종일 끙끙대며 작업을 하고 방전되어 드러눕는 걸 반복하는 게 자신을 돌보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나 싶지만, 저에게 즐거움을 주는 환경을 스스로에게 선물하고 싶었어요. 주어진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동의 상태가 아니라 제가 나서서 뭔가를 바꿔나가며 보내는 시간이 즐겁기도 하고요.
언제나 제가 가진 한 줌의 집중력과 기력은 업무에 모조리 내어 주었습니다. 업무를 할 때 저는 꽤 꼼꼼한 편이라서(믿을 수 없겠지만..) ‘이만하면 됐지'에서 멈추기보단 ‘조금이라도 개선할 부분이 있으면 끝까지 판다'의 태도를 장착한 사람이었어요. 모든 것이 문제없이 굴러가는 상황에서도 ‘더 잘 굴러갈' 부분을 늘 궁리했습니다.
이제 기어를 바꿔볼 거예요. 업무에서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의 지점을 찾아가고, 일상에서는 ‘굳이' 노력을 들여 더 좋아지게 만드는 영역을 계속 늘려갈 거예요. 일상의 고수가 될 겁니다!
엊그제는 잡초에 점령당한 정원 잔디를 삽으로 모조리 파서 뒤집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정원이 외계인의 침공을 당한 듯한 상태가 되었는데,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건지 당연히 찾아보진 않았고요. 3월이 끝나고도 저희 집에 여전히 정원이라는 것이 남아 있을지는… 지켜봐 주세요.
삽질이 취미인
케잌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