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아무 생각 없이 듣고 쓰다가 최근 들어 곱씹어 보게 되는 말이 몇 가지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박수칠 때 떠나라'예요.
소위 전성기가 끝나고 쇠락한 모습을 남들에게 보이기 전에 미련 없이 물러나야 한다는 것을 암시하는 표현이지요. 우리는 커리어의 정점에서 돌연 사라지는 스타에 열광합니다. 정상에 있는 깃발을 딱 뽑고 거기에서 이야기가 마무리되기를 바라죠. 완벽한 사람으로 좋은 기억만을 남기고 싶은 욕구를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저런 마음이 우리 모두를 필연적으로 외롭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어요.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형기 시인의 ‘낙화'의 한 소절도 (시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비슷한 맥락에서 종종 인용되곤 합니다. 떠날 때를 스스로 결정한 이가 남긴 말이라기보다는 전성기가 지났는데도 버티고 있는 사람을 향한 암묵적 강요나 비난으로 더 자주 쓰이는 것 같습니다.
박수칠 때 떠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버티면 지금까지 쌓아온 명성에 흠이 가는 것은 물론이고, ‘민폐' 취급당하기 일쑤이지요.
비단 예술계나 스포츠, 연예계 등 대중에게 ‘성과’가 노출되는 직업뿐 아니라 주변에서도 이런 사례는 흔하게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회사에서 팀장이었다가 좌천되어 다시 팀원이 된다든지, 한직 발령이 난다든지, 승진에서 계속해서 밀리는 ‘윗사람’들이 자리를 지키며 매일을 성실하게 보내는 모습을 보면서, 솔직히 ‘나라면 자존심 상해서라도 그만둘 텐데'라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모두가 그분 뒤에서 수군거리거나 지나치게 안쓰럽게 바라보곤 했는데, 결국은 그러한 시선과 자기 효능감의 상실을 견디다 못해 당사자는 회사를 나가고야 말았죠. 이게 퇴사한 당사자뿐 아니라 모두에게 얼마나 고약한 일이었는지 이제야 깨달았어요.
정점 이후를 보여주지 않는 사회, 보고 싶어 하지 않고 보여줄 수 없게 만드는 문화 속에 살면서 우리가 치러야 하는 대가가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저는 성장이 멈춘 구간에서 그저 삶을 이어가는 일, ‘빛이 바랜’ 채로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일을 상상할 수 없었어요. 그러한 모습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문화를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 역시 경쟁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해서 끊임없이 성장하는 방법으로 저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인생은 우상향 그래프가 아니고, 전성기가 지나도 삶은 이어집니다. 단지 그것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 문화가 있을 뿐이에요.
방송인 이경규 씨가 2022년 mbc 방송연예대상 공로상을 수상하면서 밝힌 소감입니다.
“많은 분들이 얘기를 합니다. 박수칠 때 떠나라.
정신 나간 놈입니다. 박수 칠 때 왜 떠납니까.
한 사람이라도 박수를 안 칠 때까지 그때까지 활동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에서 끝나는 동화가 아니라, 그 후에 이어지는 삶의 다양한 굴곡을 눈앞에서 좀 더 많이 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아름답지 않지만 현실적인 모습’도 볼 수 있는 내공을 가지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삶의 ‘최고가 아닌' 구간을 지나는 누군가에 대해,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해 좀 더 관대해질 수 있기를요.
당신의 박수는 고맙지만 저에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언제 그만두고, 어떤 일을 할지는 제가 정하겠습니다.
우상향 그래프에 알레르기가 있는
케잌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