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로그>를 처음으로 보낸 것이 2월 15일이니까 벌써 7개월째 뉴스레터를 보내고 있어요. 격주로 하나씩 보냈으니 이번이 겨우(?) 16번째 레터라 기간에 비해 엄청나게 많은 수는 아니지만 그래도 7개월이라니요!
막연히 뉴스레터를 보내고 싶다고 생각만 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보낸 시간이 길어지자, 눈을 질끈 감고 시작한 게 올해 2월이에요. 하다 보면 뭔가 명확해지겠지,라고 기대하고 그냥 시작했는데 시간이 지나도 그냥 보내고 있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구독자는 여전히 한 줌이고요, 읽는 사람의 비중도 매번 비슷비슷합니다.
돈을 벌고 싶은 것도, 유명해지고 싶은 것도 아닌데(말했다시피, 구독자는 한 줌입니다) 저는 도대체 무슨 마음을 담아 글을 보내고 있을까요?
저의 첫 구독자 중에는 친동생도 있는데요, 저의 구독자 수와 구성(모두 지인)을 듣더니 ‘그 정도면 그냥 단톡으로 보내'라는 말을 하기도 했어요(꽤 일리 있는 얘기라고 생각했습니다).
뉴스레터를 보낼 때마다, 이게 도대체 나에게, 그리고 받아보는 사람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듭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마음속에 잔뜩 쌓여서 말하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는 상태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에요. 오히려 그 반대여서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는 건 매번 똑같습니다.
하지만, 그만할까? 싶은 생각이 들 때마다 작은 피드백을 받고 있어요.
누군가는 댓글로, 누군가는 링크를 걸어 둔 구글 설문지를 통해, 누군가는 전화로/문자로/톡으로 이번 주에 그 글을 읽어서 좋았다, 내 마음은 이랬다라고 말을 걸어옵니다.
저는 제가 무슨 생각을 마음에 안고 사는지 궁금했던 것 같습니다. 글로 풀어내는 과정에서 제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고, 또 이게 나만의 생각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연결되고 싶기도 하고요.
저는 업무를 할 때 그 일의 목적과 목표지점을 명확하게 해 두고 시작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하지만 일을 벗어난 인생의 많은 것들이 그렇게 되지 않더라고요. 무엇을 하고 싶은 건지, 도대체 뭘 그리면서 이걸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는 때가 더 많아요.
모든 게 명확해질 때까지 기다리면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 같아서 어떤 일들은 그냥 해버립니다. ‘그냥 하다 보면 명확해지는 순간이 올 거예요’라고 말할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아요.
뉴스레터를 통해서 하고 싶은 게 뭐야? 뉴스레터는 왜 보내는 거야? 보내고 보니까 어때?라고 물으면 저는 웅얼웅얼거리고 맙니다. 뭐라고 답해야 할지 여전히 모르겠어요. 명확한 것에만 움직이는 사람이었는데요, 지금은 명확한 게 하나도 없어요.
스페인의 순례길, 까미노 데 산티아고를 걸은 적이 있어요. 까미노길을 걷다 보면 중간중간에 노란 화살표가 있어서 그걸 따라가면 목적지에 도달하게 됩니다. 어떤 화살표는 백 미터 앞에서도 보일 정도로 크게 표지판으로 서 있고, 어떤 것은 길가의 작은 돌멩이에 그려져 있어서 코 앞까지 가야 겨우 보일 정도로 눈에 띄지 않습니다. 잘 안보일 때도 있지만 어쨌든 화살표는 반드시 있어요. 그 사실이 안심이 되었습니다. 잘 살펴보기만 하면, 혹은 조금만 더 가다 보면 반드시 나올 거라는 걸 믿고 있으니까요.
20대 후반에 그 길을 걸으면서 제 인생에도 노란 화살표 같은 것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길이 맞나? 싶은 불안감이 들 때즈음 눈앞에 노란 화살표가 나타난다면 얼마나 안심이 될까요. 이 길이 맞다면,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만 있다면 지금의 힘듦은 얼마든지 견딜 수 있는 것이 됩니다(뭐, 항상 그런 건 아니지만요).
인생이 괴로웠던 수많은 순간들은 제 선택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그 괴로움이 증폭되었던 경우가 많았습니다. 안 그래도 괴로운데, 이 괴로움이 아무런 의미도 목적도 없는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더 힘들었어요.
어렸을 땐 촘촘하게 인생의 구간구간마다 누가 세워둔 노란 화살표를 따라 발걸음을 재촉해 왔는데, 언젠가부터 화살표가 잘 보이질 않네요.
인생에 노란 화살표 같은 것이 있다면, 살아가는 것의 묘미는 노란 화살표를 얼마나 잘 따라가는가가 아니라 노란 화살표가 사라지는 구간을 어떻게 보내는가 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얼마간은 목표를 잃고 헤맬 권리를 갖는 것이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도 어른이 되어 배운 것 중 하나예요. 잘 실천할 수 있는가는 전혀 다른 문제지만요.
뉴스레터를 보내는 것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을 했는데, 인생 얘기까지 같네요.
어딘가에 가닿지 않아도, 무언가 멋진 걸 만들어내지 못해도, 시도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것들을 그냥 해보는 것도 좋아요. 아마도 저에게 <마흔로그>는 그런 것 같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그동안 한 마디라도 말 건네준 모든 분들께 감사해요!
(작별인사 아님. 다담주에 또 만나요)
케잌 드림 |